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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의사동상
나석주의사동상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나석주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현재 외환은행 본점이 위치한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자리에 세워진 동상이다. 나석주의사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농장이 있었던 황해도 재령 출신으로 3·1운동이 일어나자 겸이포에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한 뒤 결사대를 조직해 독립군 자금 모집과 친일파 처단 활동을 펼치다가 1920년 9월 중국 상해로 망명하였다. 중국에서 나석주는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과 한단 군관학교를 거쳐 중국군 부대에서 활동하였다. 그 뒤 천진에서 의열단에 입단해 한층 적극적인 독립투쟁을 강구하던 중 1926년 6월 유림 대표 김창숙을 만나 조국의 강토와 경제를 착취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은행, 식산은행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1926년 12월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고 서울에 잠입한 나석주는 먼저 조선식산은행에 들어가 대부계 철책 너머로 폭탄 한 개를 던지고 큰길 건너편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지점으로 달려가 총격과 함께 또 폭탄 한 개를 던졌다. 그러나 폭탄은 모두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이어 동양척식주식회사 바로 옆의 조선철도 회사로 들어가 한 차례 더 총격을 가하고 길거리로 나왔는데 황급히 출동한 경찰대와 기마대의 추격을 받자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수도권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5번 출구에서 120m에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66
도보 약 3분 · 직선 221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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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
우당 이회영 선생 흉상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앞장섰던 애국지사 이회영 선생을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흉상이다. 이회영은 이조판서 이유승의 4남으로 태어나 성장했다. 1905년에 을사늑약 체결의 음모를 저지하고 무효로 하는 운동을 주도하였고, 고종황제를 설득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 파견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 때, 6형제 전원과 일가족 50여 명이 전 재산을 정리하여 망명을 떠났다.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강습소를 개소하였고, 1912년에는 합니하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무관학교 교육을 시작했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할 때까지 독립군 간부 3,500여 명을 양성하는 성과를 이루고 독립전쟁을 주도하였을 뿐만 아니라 광복군을 창설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상해 임시정부가 구성됐을 때는 의정위원으로 참여했고, 이후 아나키즘 운동과 의열단 조직을 지원함과 동시에 항일구국연맹을 결성하여 흑색공포단을 산하에 두고 의열투쟁에 매진했다. 중국의 항일부대와 독립군 부대가 연합하여 항일투쟁을 하도록 현지 지도 차 잠입하던 중 대련에서 체포되어 뤼순 감옥으로 이송됐다. 이곳에서 모진 고문과 굶주림으로 순국하는데 이때가 선생의 나이 66세였다. 흉상은 이회영 선생의 공적을 기려 기념사업회에서 건립하였으며, ‘이회영·이시영 6형제 집터’ 표지석이 위치한 서울 YWCA 앞에 함께 놓여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11길 20
도보 약 4분 · 직선 334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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