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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Muakjae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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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traction
Seonbawi (Seonam)
신성한 대상물이 되고 있는 바위로, 마치 중이 장삼-검은 베로 만들어진 품과 소매가 넓은 중의 웃옷-을 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서 이와 같이 부르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쌓을 때 당시의 문신이었던 정도전과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느냐 성 밖에 두느냐로 크게 의견대립을 보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만일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면 불교가 왕성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은 문신들은 힘을 못쓰고, 성 밖에 두면 반대로 승려가 힘을 못쓰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결정을 못 내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눈이 녹지 않은 자리가 있어 태조는 이것을 성터라고 생각하였고 결국 바위는 성 밖으로 밀려났다 한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자연석으로서, 직접적인 신앙대상물은 아니지만 불력[佛力]을 지닌 존재처럼 신성시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6 (무악동)
Walk ~11 min · 848 m 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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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ractionInwangsa Temple (Seoul)
조선왕조실록에 태조가 인왕사에서 조생스님을 만났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태조의 후원으로 늦어도 1397년에는 사찰이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창건주는 무학대사와 조생선사이며, 매월 초하루 보름마다 내원당에서 법회를 올리고 강설은 호국인왕금강반야바라밀경을 설하였다고 한다. 세종 때는 조선왕조를 수호하려는 뜻에서 산의 명칭을 인왕산이라 칭하고 사찰을 인왕사라 부르게 되었으나, 연산군 때 궁궐이 보인다 하여 복세암과 금강굴과 함께 인왕사도 폐사되었다. 그 후 복원되어 상당기간 유지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폐사지만 남게 되었다. 이후 1910년경 선바위를 중심으로 박선물 거사가 선암정사를 지어 서옹, 탄옹, 자인, 대원스님 등이 뒤를 이었으며, 대원암, 보광전, 관음전, 극락전을 짓고 수도 정진하였다. 1942년에는 조계종 봉은사 말사로 편입되었고, 1977년에는 인왕사 내 5개 전각과 토지가 인왕사에 증여되어 1988년에 전통사찰 인왕사로 지정등록되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통일로18가길 16-1 (무악동)
Walk ~12 min · 920 m 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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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ractionSeodaemun Independence Park
서대문독립공원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수많은 애국지사와 1960년대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많은 시국사범들이 수감되었던 서울구치소가 있었던 곳이다. 서울구치소가 1987년 11월 경기도 의왕시로 옮겨감에 따라 감옥 7동, 사형장, 지하여자감옥 등을 복원하고 탑골공원에서 3·1운동기념탑을 이전하였으며, 1992년 영은문 주초와 연계하여 1992년 8월 15일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서대문독립공원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옥고를 치렀던 애국지사의 자주독립 정신을 후손에게 기억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독립문, 역사관,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함과 동시에 시민이용에 불편을 초래했던 노후한 공원시설을 정비하여 공원을 방문하는 학생, 관광객, 시민고객들의 편의를 최대화하였다. 특히, 독립문은 그동안 시민들의 접근을 제한하였으나, 서대문독립공원 재조성 사업으로 인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Walk ~13 min · 1051 m 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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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ractionDongnipgwan Hall
서대문 독립공원에 있는 독립관은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었던 옛 독립협회 사무실로 쓰던 독립관을 고증에 따라 복원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원래 중국 사신 방문 시 접대를 하던 공간인 영빈관으로 사용하던 모화관 건물을 청·일 전쟁 이후 독립협회에서 사용하던 건물이다. 1894년 이후 서재필이 발의하고 독립협회에서 주도하여 개수한 후 독립관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민권·자강 사상을 고취하는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독립문과 함께 독립사상을 표현하였으나 일제에 의하여 철거되었다. 독립관은 지상 1층 한식 목조건물로서 정면 6칸, 측면 4칸, 7량 팔작지붕 구조였으며, 원래 위치는 동남쪽으로 약 350m 지점이었다. 서대문독립공원 조성사업계획에 의거 전문가의 고증 자문에 따라 지상층은 당초대로 한식 목조건물로 복원하여 순국선열들의 위패봉안 및 전시실로 사용하고, 지하층은 행사 및 유물 보관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1996년 서울시에서 건립하였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Walk ~13 min · 1051 m 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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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ractionStatue of Seo Jae-pil
전남 보성 출신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건립된 동상이다.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8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Walk ~13 min · 1051 m dir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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