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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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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점오소리순대
오소리순대는 매일 아침 그날 판매할 음식을 준비하고 음식이 다 떨어지면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는다. 재료는 30년을 한결같이 주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고른다. 박리다매라는 주인의 원칙에 따라 모든 재료는 최고급을 사용한다. 사골을 24시간 고아서 국물을 내고 순대와 갖가지 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끓이는 순댓국은 맛이 깔끔하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회기로4길 16
도보 약 1분 · 직선 76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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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서울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이 건물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가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중앙도서관이다. 본관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건축가 박동진(1899~1982)이 설계하였고, 건축의 양식과 구조는 당시 교수로 있던 오천석의 모교인 미국의 듀크대학 도서관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중앙 도서관을 준공할 당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여 당시 금액으로 22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차질 없이 마쳤다고 한다. 본관 건축 다음 해인 1935년 6월에 착공하여 1937년 9월에 본관의 왼쪽 언덕에 화강암으로 고딕 양식의 5층 건물로 완공하였다. 평면은 ㄴ자형으로 모서리 부분의 중앙탑 부를 중심으로 본채가 양쪽에 있는데, 하나는 탑과 나란히 남쪽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하나는 탑에서 북쪽으로 꺾여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본채는 3층이고, 남서 모서리의 탑비는 고딕풍의 5층 탑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돌을 덧붙였다. 도서관 준공 당시 1층에는 교수 연구실 32개, 2층에는 250석의 대 열람실을 배치하고, 책상마다 스탠드와 가죽 의자를 비치하였다. 3층에는 20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3층 이상은 민속자료, 미술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꾸몄다. 수도권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1번 출구에서 300m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5가)
도보 약 4분 · 직선 3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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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설고려대학교 박물관
고려대학교박물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박물관 중 하나로 1934년 도서관 일부 공간에 남창 손진태 선생이 수집한 민속품을 전시하면서 개관했다. 1936년 안함평 여사의 기부금으로 민속 유물을 수집하고, 신창재·박재표 등 뜻있는 분들의 유물 기증이 이어지면서 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962년 5월에는 당시 우리나라 대학 박물관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건평 851평(약 2813㎡)의 건물을 준공하여 새 보금자리를 틀었다. 1973년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현대미술실을, 1985년에는 현대도자기실을 설치하여 다양한 전시와 활발한 학술조사 및 발굴을 통해 대학 박물관의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2005년 5월에는 고려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준공한 백주년기념관으로 이전·개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박물관 전시실에는 각각의 주제에 맞게 혼천시계, 동궐도를 비롯한 국보 문화재와 정선, 김홍도 등의 고회화 작품, 이중섭, 박수근, 권진규 등의 근현대 미술작품, 고려대학교 역사와 함께 해 온 근현대사 기록물에 이르기까지 약 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은 국보 3건, 보물 5건을 비롯하여 고고, 역사, 민속, 도자기, 서화, 현대미술 등 다양한 유물을 소장한 종합박물관으로서 다채로운 전시와 문화강좌, 교육 프로그램 등으로 대학과 지역사회의 문화적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다. 더불어 소장품 수집과 보존, 학술조사연구뿐만 아니라 활발한 전시와 교육 활동으로 대학의 공간을 넘어,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문화공간이 되고자 힘쓰고 있다. 한편 개교 100주년을 앞둔 2004년에 본교의 교사자료를 수집, 정리, 전시하는 기록자료실(현 대학기록파트)을 설치하여 고려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는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본교의 모든 행정기록까지도 관리하는 대학기록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학기록의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본교의 정체성 확보와 정통성 확립에 힘쓰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5가)
도보 약 4분 · 직선 3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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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서울 고려대학교 본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경영을 맡았던 김성수가 1933년 공사를 시작하여 1934년에 완성한 본관건물로 박동진이 설계하였다. 3층(중앙탑은 6층)이며 화강석을 주재료로 한 좌우대칭의 고딕양식으로 되어 있다. 평면 H자형이며, 중앙에는 넓은 홀이 있다. 건물 현관의 두 돌기둥에는 학교의 기상을 상징하는 호랑이 상이 조각되어 있고, 중앙 후문의 돌기둥에는 무궁화가 조각되어 있다. 건축 당시에는 내·외부가 호화스럽고 웅장하여, 국내의 학교 건축물로서는 유례가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도보 약 5분 · 직선 37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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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
영휘원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이고, 숭인원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 이진 원손의 무덤이다. 엄씨의 위패는 현재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에 모셔져 있다.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는 엄진삼의 장녀로 8살에 입궐하여 명성황후의 시위 상궁이 되었다가, 1897년 영친왕을 낳아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1903년 황귀비로 책봉되고 경선궁에 살았다. 황귀비는 여성의 신교육을 위해 진명여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양정학교가 재정난을 겪자 땅 200만 평과 내탕금을 기증하는 등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경술국치 후 1911년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주는 덕안궁에 모셨고 이후 덕안궁은 육상궁 경내로 옮겨졌다. 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 이진 원손(1921~1922)은 영친왕와 황태자비 이씨의 첫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에 영친왕 내외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였다. 순종황제가 원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을 내려, 현재의 자리에 무덤을 조성하였다. 영휘원은 조선시대의 원소 제도에 맞게 조성하여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세웠고 원침에는 호석을 둘렀다. 숭인원은 영휘원과 비슷하게 조성하였으나 원침에 호석과 석양을 생략하고 석물과 봉분의 크기도 다른 원에 비해 작게 조성하였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도보 약 8분 · 직선 64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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