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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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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서울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이 건물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가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중앙도서관이다. 본관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건축가 박동진(1899~1982)이 설계하였고, 건축의 양식과 구조는 당시 교수로 있던 오천석의 모교인 미국의 듀크대학 도서관을 참고하였다고 한다. 중앙 도서관을 준공할 당시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여 당시 금액으로 22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차질 없이 마쳤다고 한다. 본관 건축 다음 해인 1935년 6월에 착공하여 1937년 9월에 본관의 왼쪽 언덕에 화강암으로 고딕 양식의 5층 건물로 완공하였다. 평면은 ㄴ자형으로 모서리 부분의 중앙탑 부를 중심으로 본채가 양쪽에 있는데, 하나는 탑과 나란히 남쪽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하나는 탑에서 북쪽으로 꺾여 동쪽을 바라보고 있다. 본채는 3층이고, 남서 모서리의 탑비는 고딕풍의 5층 탑으로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돌을 덧붙였다. 도서관 준공 당시 1층에는 교수 연구실 32개, 2층에는 250석의 대 열람실을 배치하고, 책상마다 스탠드와 가죽 의자를 비치하였다. 3층에는 20만 권의 장서를 보관하고, 3층 이상은 민속자료, 미술품을 진열할 수 있도록 꾸몄다. 수도권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1번 출구에서 300m에 위치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안암동5가)
도보 약 4분 · 직선 3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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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서울 고려대학교 본관
고려대학교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의 경영을 맡았던 김성수가 1933년 공사를 시작하여 1934년에 완성한 본관건물로 박동진이 설계하였다. 3층(중앙탑은 6층)이며 화강석을 주재료로 한 좌우대칭의 고딕양식으로 되어 있다. 평면 H자형이며, 중앙에는 넓은 홀이 있다. 건물 현관의 두 돌기둥에는 학교의 기상을 상징하는 호랑이 상이 조각되어 있고, 중앙 후문의 돌기둥에는 무궁화가 조각되어 있다. 건축 당시에는 내·외부가 호화스럽고 웅장하여, 국내의 학교 건축물로서는 유례가 없는 훌륭한 것이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도보 약 5분 · 직선 37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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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
영휘원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이고, 숭인원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 이진 원손의 무덤이다. 엄씨의 위패는 현재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에 모셔져 있다.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는 엄진삼의 장녀로 8살에 입궐하여 명성황후의 시위 상궁이 되었다가, 1897년 영친왕을 낳아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1903년 황귀비로 책봉되고 경선궁에 살았다. 황귀비는 여성의 신교육을 위해 진명여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양정학교가 재정난을 겪자 땅 200만 평과 내탕금을 기증하는 등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경술국치 후 1911년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주는 덕안궁에 모셨고 이후 덕안궁은 육상궁 경내로 옮겨졌다. 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 이진 원손(1921~1922)은 영친왕와 황태자비 이씨의 첫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에 영친왕 내외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였다. 순종황제가 원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을 내려, 현재의 자리에 무덤을 조성하였다. 영휘원은 조선시대의 원소 제도에 맞게 조성하여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세웠고 원침에는 호석을 둘렀다. 숭인원은 영휘원과 비슷하게 조성하였으나 원침에 호석과 석양을 생략하고 석물과 봉분의 크기도 다른 원에 비해 작게 조성하였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도보 약 8분 · 직선 64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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